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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강경에서 가족들과 가볼만한 강경 근대 역사 전시관에 대해서 소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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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은 우리나라 근대 역사에 있어서 매우 의미 있는 도시입니다.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입국하며 처음 도착한 천주교 첫 사목지가 강경이며 침례교회의 첫 예배 장소 등을 비롯한 기독교의 성지, 그리고 일제 강점기 아래 많은 항일 투쟁 등 근대 역사에서 강경은 중요한 위치에 있던 도시임을 알려 주는 근대역사 전시관이 있어 찾아봤습니다.

낮은 건물들이 모여있는 강경읍 중심가에 랜드마크처럼 종탑 두 개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12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강경제일교회의 종탑입니다. 이 종탑을 바라보며 찾아가 보면 교회의 마당 왼편에 3층 건물의 근대역사 전시관을 만나게 됩니다.

근대역사전시관은 강경제일교회에서 주관해 그동안 모아 놓은 많은 사진과 귀중한 자료들을 전시관에 주제별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근대 역사를 한눈에 돌아 볼 수 있게 정리되어 있어 자라는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좋은 역사 교육 자료로 활용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멀리서도 보이는 뾰족한 종탑은 유럽의 많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딕 양식의 건축으로 근대 문화의 유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강경의 역사와 어울리는 건축 양식으로 보입니다.

나지막한 스카이라인을 가진 강경 시내에서 독특하게 높이 솟아 보이는 랜드마크입니다. 그리고 종탑이 쌍으로 올라간 모습도 특이해 보입니다.

전시관 1층에 들어 서면 널찍한 공간에 우리나라 근대 역사를 전근대시대, 근대시대, 현대시대로 구분해서 시대 별로 중심되는 사건과 인물들을 사진으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근 현대사를 한눈에 보고 배울 수 있는 전시관입니다.

전근대 시대 (1876년 이전) - 1876년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강화도 조약이 일본의 강압적으로 맺어진 불평등 조약이었으나 이후 조미 수호 조약을 체결하는 등 조선이 문호를 개방하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어 근대문화의 시작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초의 천주교 사제가 된 김대건 신부는 1846년 페레올 주교와 함께 입국해 사목활동을 하는데 입국한 첫 기착지가 강경으로 여기에 기념 성당이 세워져 보존되고 있습니다.

근대시대 (1876 - 1945) -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일본은 조선을 강제로 합병하고 조선은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고 우리의 선조들은 독립운동을 위해 해외로 망명하거나 국내에서 일본에 저항하는 등 항일 운동을 합니다.

이 시기에 많은 선교사들이 입국해 학교와 병원을 짓는 등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교회가 신사참배 반대 운동에 앞장서며 항일 운동의 중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흔적들을 강경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현대 시대(1945 년 해방 이후) - 동족상쟁의 6.25 전쟁을 치르는 등 많은 갈등과 분열 대립 속에서 아직도 남과 북이 갈라져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면서 세계에서 부러워하는 나라로 우뚝 서게 됩니다.

전시장의 기록을 보며 여러모로 많은 희생을 한 우리 선열들을 떠올리며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강경은 그냥 강경이 아니다. 시간의 기록이고 문화이며 새날의 꿈이다" - 박범신 작가가 전시관 입구에 기록해 놓은 글입니다. 강경이 시간의 기록이라고 한 것처럼 근대 시대의 강경은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으며 그 이야기를 엮으면 강경이 시간의 기록이 될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가슴 아픈 사건들을 기록과 사진으로 보며 나라 잃고 힘없는 민족의 서글픔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중에도 교육을 통해 국민들을 깨우치고 나라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선각자들이 나와 민족의 지도자들을 길러내는 모습은 우리 민족의 저력을 실감하게 합니다.

3.1 만세 운동에 앞장섰던 지도자들이 소개되고 독립신문을 만드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많은 지도자들로 인해 오늘의 대한민국이 설 수 있게 되었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강경은 상업도시로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 시대를 보여주는 가옥들이 많이 있으며 지금까지 잘 보전되어 있는 건물들이 근대 역사의 중심에 강경이 활발한 도시이었음을 보여줍니다.

1960-70년 대의 강경은 상업적으로 많이 활발했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 줍니다. 지금은 인구가 감소하고 노령화되어 침체해가는 모습을 보여 안쓰럽게 보이지만 근대 유산이 많이 남아있는 강경임를 생각해보면 근대 유산을 잘 보존해서 지역 발전의 근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역 발전을 위해 내세운 "주민이 활발한 도시는 소멸하지 않는다" 처절하게까지 느껴지는 표어입니다.

강경 시내를 한눈에 바라보게 하는 시내의 모형도입니다. 금강에 둘러싸인 자그마하게 보이는 도시이지만 이곳이 근대 역사의 큰 물줄기가 시작되는 많은 일들이 있었음을 역사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강경제일교회의 역사관이 따로 있어 강경에서 기독교 전파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교회들이 강경에 많이 있어 젓갈 시장이 강경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면 교회는 정신문화의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관의 바로 맞은 편에는 황산 초등학교가 있고 장날에는 초등학교 옆길을 중심으로 상인들이 모여 5일 장(4일. 9일)이 섭니다.

강경의 역사관에서 근대시대의 강경을 돌아보고 나와서 재래시장도 구경하면 강경의 옛날과 현재의 모습을 잘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서해에서 중국을 통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개화기를 다른 지방보다 일찍 받아들이게 되어 근대문화의 단초가 된 최초의 것들을 강경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최초의 김대건 신부 사역지, 최초의 침례교회 예배지, 최초의 갑문, 최초의 신사참배 거부 운동, 최초의 스승의 날 기념 등 과 최초의 노동조합도 강경에서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해마다 치러지는 '강경문화재야행'에서 금년에는 강경의 역사 속 최초의 것들을 소개하며 공연 및 체험을 통해 문화재의 가치를 재 발견하고 홍보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강경의 역사관에서 우리나라 근대사의 중심에 있었던 강경의 역사를 배우고 강경문화를 체험해 보면 강경을 재 발견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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