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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개천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공주의 봉황산 단군성전과 역사를 소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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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공주의 봉황산 단군성전과 역사를 소개드립니다.

 

 

봉황산 단군성전

위치 : 충남 공주시 무령로 154

대한민국 건국 이후 해(年)를 표기할 때 우리는 단군기원(檀君紀元)을 사용하였습니다. 줄여서 단기라고 하였지요. 그러다가 1962년 이후 서력기원(西曆紀元), 즉 지금 사용하는 서기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필자는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라 함) 4학년이었는데, 단기와 서기가 동시에 사용되었고, 계산법이 시험에도 자주 출제되어 공식을 외우느라 애를 썼습니다. 

(서기) = (단기) + (2333년)

'단군 할아버지가 이 땅에 나라를 세운 것은 예수님이 탄생한 것보다 2,333년 더 빠른 것이다.' 정말 귀에 못이 박여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은 공식입니다. 

단군 진영 / 출처 - 나무위키​

2022년은 단기로는 4335년입니다. 즉 2022년에 2333년을 더하면 단기 4355년이 되는 것이지요. 단기 4355년 10월 1일 개천절이 다가옵니다. 개천절(開天節)은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우리나라의 건국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한 국경일입니다. 단군왕검이 이 땅에 처음으로 고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날을 기리는 것이지요. ​

 

지금은 거의 잊힌 노래가 되었지만, 개천절 노래 가사가 떠오릅니다. ​

개천절 노래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 아버님은 단군이시니

이 나라 한 아버님은 단군이시니'

공주시에 단군을 모신 단군성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도 공주 원도심의 가운데에 있는 나지막한 산인 봉황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공주시 단군성전은 봉황산의 북쪽 기슭 반죽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도에도 위치가 표시되어 있지 않고, 내비에도 검색이 잘 안됩니다. 그래서 '공주시 무령로 154' 또는 '공주시 반죽동 75'로 검색해야 합니다. 중동 교차로에서 무령로를 따라 무령왕릉과 왕릉원 방향으로 가다 보면 왼쪽 산기슭 입구에 돌로 만든 단군성전 이정표가 있습니다. ​ 

높다랗게 쌓아 올린 축대벽 아래에는 제법 큰 주차장이 있습니다. 높다란 곳에 삼문이 있어 계단을 따라 오릅니다. ​ 

돌 담장 아래에는 단군성전 건립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단기 4334년 10월 3일에 단군성전 건립위원회에서 건립하였다고 쓰여 있습니다. 단기 4334년이면 여기에 2333년을 빼니 2001년이 나오는군요. 그러니까 서기로 말하면 2001년 개천절인 10월 3일 건립되었다는 것이지요. 지금부터 21년 전에 세워진 것이네요. 

 

공주에 단군성전이 건립된 경위를 찾아보니 꽤 어려움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1981년에 단군성조신단을 공주시와 공주 향교, 봉사 단체의 지원을 받아 건립하였으나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완공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던 것 같습니다.

여느 향교나 서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태극삼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아마도 개천절 행사가 이곳에서 진행될 것이고 그때는 문이 활짝 열리겠지요. 

담장을 따라 돌아가며 안을 들여다봅니다. 누군가 관리는 참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군성전은 전면 3칸, 측면 1칸의 목조건물로 지붕은 팔작 기와지붕입니다. 단군성전 안에는 국가에서 지정한 국조 단군의 표준 영정이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 

성전의 기둥은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 양식입니다. 현판은 한국 근현대 서예의 대가인 김용현이 썼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의 시조로 알려진 단군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금이 없어 관리사를 짓지 못해 평상시에는 문을 열어놓지 못한다고 하니 아쉬움이 큽니다. 이곳 공주시에 3천 평에 이르는 제법 큰 단군성전이 있는데도 그 위치조차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국조인 단군에 대한 오늘날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건국신화를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그 정신만은 이어받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단군신화 속의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은 대한민국의 국가의 캐치프레이즈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의 교육 이념으로서 교육 기본법 제2조에 명시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 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어서 공주 봉황산 아래에 있는 단군성전이 항상 문을 열고 자라나는 세대가 홍익인간의 정신을 이어받는 교육의 현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단군성전에서 봉황산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이곳에서 500m만 올라가면 정상입니다. 

봉황산 정상 가까이 이르니 단군성전 가는 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습니다. 

단군성전을 품은 봉황산은 해발 148.3m의 나지막한 산입니다. 봉황산은 조선시대 선화당의 터가 있던 주산이었습니다. 선화당은 충청남도 관찰사가 집무하던 곳입니다. 봉우리가 수려하여 마치 봉황새가 알을 품은 형국이라 하기도 하며, 봉황산을 이루고 있는 능선의 형태에 따라 뒤쪽은 봉산, 앞쪽은 황산이라 하여 봉황산이라 불립니다. 봉황산의 남쪽으로는 서열봉과 일락산이 위치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시가지를 지나 곰나루와 금강이 위치해 있습니다. 봉황산의 동쪽은 금강의 지류이며, 공주 시가지를 관류하고 있는 제민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제민천 정상에는 각종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어 시민들의 건강과 휴식 공간이 됩니다. 

봉황산은 공주시 원도심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서 어느 마을에서건 올라오는 길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봉황산의 남쪽인 봉황동 봉황큰샘마을에서 오르는 길이 가장 잘 닦여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방향으로 내려왔습니다. ​ 

봉황동 봉황큰샘마을에는 봉황 큰 셈이라는 전통 우물이 있습니다. 이 우물은 1980년 초까지 주민들이 사용했으나, 지금은 사용이 금지되어 있고 우물터에서 빨래하는 여인상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우물은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으나, 충청감영이나, 대통사의 전용 우물이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어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기념물 제24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공주시 원도심 봉황산 기슭에 자리한 단군성전은 단기 4355년 10월 3일 개천절 맞이로 바쁠 것 같습니다. 뜻깊은 개천절을 맞아 인근의 단군성전 등을 둘러보고 단군의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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